내 마음과 맞는 도시를 찾아서

제목을 ‘나와 도시의 궁합’, ‘사람마다 맞는 도시가 있다’ 이런 식으로 쓰다 지우기를 여러 번 했다.
지금의 제목도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언제 수정할 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사람들이 내게 묻는 공통된 질문들이 있다.

“몇 개국이나 다니셨어요? 이제껏 여행한 곳들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나는 재빨리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음..”하고 생각하는 척(?)하지만 내겐 답이 딱히 없다.

일단 다녀온 해외 국가들의 숫자를 헤아려본 적도 없고(많아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헤아려본들 요즘같은 ‘대해외여행 시대’에 그리 많은 나라들을 돌아본 것도 아니다.

여행한 곳들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냐는 질문 역시 어렵다.

어떤 지역이든 저마다의 색깔이 있고 그 안에서 내가 만든 여행의 추억도 죄다 제각각,

좋았든 싫었든 나름의 의미는 있었던지라 어느 한 곳을 꼬집어 말하기가 까다롭다.

 

물론 나에게 정말 큰 영향을 준 도시들은 있다. 하도 떠들고 다녀서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우리나라 경주와 앙코르왓이 위치한 시엠립이다.

그런데 이 도시들은 ‘가장 좋았던’이라는 수식을 붙이기가 다소 애매하다.

도시와 나 사이에 온갖 감정들이 섞여 있어서 마치 도시와 내가 진하게 연애라도 한바탕 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좋을 때도 있었고 싫을 때도 있었고 설렐 때도 있었으며 심지어 권태기가 온 적도 있었다.

어찌보면 내 마음만 소란했지 도시들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품어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위안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도시들이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바,

나는 조금 취향이 없는(?) 혹은 까다롭지 않은 여행자처럼 비춰지기도 하지만

나이를 한살씩 더 먹으면서, 여행작가 6년차 쯤에 접어들면서

‘나와 잘 통하는 도시’, ‘나와 맞지 않는 도시’들이 있다는 믿음이 강해졌다.

그러니까 남들이 다 좋다는 도시에 가서 이상하게 기운이 다 뺏기는 듯한 느낌이 있을 때도 있고

남들이 재미없다는 도시에 가서는 몸도 마음도 활기차져서는 온종일 기분 좋게 돌아다닐 때도 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요즘은 처음 간 날 마주한 ‘첫인상’만으로도

이 도시가 나와 맞는지 안맞는지 조심스레 점처보게 된다.

“세상에 가볼 곳이 얼마나 많은데 간 데 또 갈 필요가 있나?”라는 넘치는 의욕으로

여러 곳에 발도장을 찍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시와 나 사이의 궁합을 따진 이후부터는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도시들은 재차 방문하는 일이 늘었다.

 

그래서 정리해봤다. 6년차 전업(강조ㅎㅎ) 여행작가의 재차 방문했던, 혹은 방문하고 싶은 도시들.

공통점을 추려보니 다음과 같았다.

 

1. 걷기 좋은 도시. 고로 대도시는 아니다.

2.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

3. 오래전 도읍이었거나 오늘날 남아있는 사적이 많아 올드시티로 분류되는 도시

4. 자연과 도심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도시 (너무 큰 도시, 너무 자연에 파묻힌 도시는 또 안된다!)

 

 

여름이면 연꽃으로 만개하는 동궁과 월지 주변의 연꽃단지 

1. 경주

나를 아는 지인들은 설령 본인들이 안갔어도 지겨우리만큼 내게 ‘경주’를 들었다.

경주는 내게 아지트 같은 곳이다.

최근들어 통 못갔는데 여름의 경주는 그야말로 찜통과 같아서

지인들에게는 여름의 경주를 열렬히 추천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나는 사계절을 다 좋아한다.

내게 여름의 경주는 양동마을서 친구들과 민박을 하며 마루에 누워 별을 봤던 기억,

자전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남산 언저리를 돌았던 기억,

황오동 부근 어떤 기사식당에서 백반 먹고 시원하게 식혜를 들이켰던 기억 등으로 점철된다.

경주 찬양은 뭐 어떻게해도 끝이 없다.

내 책 <쉼표,경주>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을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경주야.”

 

 

대전 과학공원 

2. 대전

대전은 ‘나의 도시’ 리스트에서 조금 아리송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일단 대도시이고 오래된 유적들이 산재한 도시도 아니어서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1)  서울에서 1시간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지만 여행 온 느낌을 물씬 낼 수 있는 도시

2) 을씨년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엑스포 과학공원이 묘한 노스텔지아를 이끌어내는 도시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풍을 갔었다!)

3) 자전거 타기에 꽤 괜찮은 도시(공공자전거의 이름이 ‘타슈’다. 너무 귀엽지 않은가!!)

4) 뚜벅이인 내게 대전시티투어버스는 꽤나 유용한 수단이다! (저렴하고 코스도 다양하다)

기타. 성심당이 있다!

 

 

치앙마이 반깡왓 예술 커뮤니티의 한 카페 

3. 치앙마이

최근 12년만에 두번째 방문한 태국 치앙마이는 어째서 이곳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달살기’ 열풍을 일으키게 했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1. 골목과 강을 따라 트랜디한 카페가 많았다.

2. 고즈넉한 사원도 많았다.

3. 자연과 도심의 조화와 균형이 너무나 훌륭했다.

4. 걷기에도 좋고 자전거 타기에도 좋고!

5. 크고 작은 야시장도 사랑스러웠다

 

시엠립 바이욘 사원의 전경 

4. 시엠립

여기를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다.

캄보디아 시엠립은 세계적인 관광도시이기도 하지만 사실 ‘앙코르왓’이라는 사원 이름에

도시 이름이 가려질만큼 광활한 유적지에 무게가 실린 곳이다.

사람에 따라선 뙤약볕에 돌덩이들만 구경하는 느낌을 받고 오기도 해서

여기야 말로 철저하게 ‘개인의 취향’으로 적어넣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아는가.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서 앙코르왓 사원까지 약 7km를 달리는 기분을!!

사원 근처 나무 그늘을 찾아 독서하는 척하다가 졸거나 멍때리는 세상 여유로움을!

 

 

루앙프라방 전경 

5. 루앙프라방

고작 5일쯤 머무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전거를 타고 이 작고 어여쁜 도시를 돌았나 모르겠다.

그날의 공기와 볕과 사람들을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가슴이 설레인다.

내가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다녀온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여행자들이 갑절로 늘어서 예전만큼 고즈넉함은 없다하는데

나는 여전히 추억을 곱씹으며 루앙프라방을 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열기구가 떠있는 바간의 풍경 

6. 바간

미얀마 바간 역시 시엠립과 비슷하게 도심 그 자체보다는 별처럼 뿌려진 파고다들이 상징적인 도시다.

시엠립과 마찬가지로 자전거나 전기바이크를 타고 매일 같이 유적지를 돌았다.

평소 아침잠이 많은 내가 이곳에서만큼은 해 뜨기 1시간전에 일어나 어둠을 헤치고,

거의 매일 새벽 일출을 보러 나갔다.

바간의 아침은 직접 겪어본 사람들만이 안다. 얼마나 황홀한지를.

성수기(건기)면 매일 같이 하늘로 떠오르는 수십개의 벌룬들과

황금빛으로 물드는 평원 위의 파고다들이 만드는 풍경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류블랴나 강변 카페와 사람들

7. 류블랴나

류블랴나 역시 단 한 번 다녀왔지만 꼭 한 번 다시 가고픈 도시다.

산을 가까이 둔 유럽의 소도시들이 대개 다 아름답지만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유난히 더 그림같은 도시였다.

지명에 ‘LOVE’가 들어가는 이 사랑스러운 도시는 걸어도 걸어도 지치는 법 없이 즐거웠다.

볕 좋은 오후나절, 나와 부모님은 강변을 걸으며 여유롭게 광합성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해가 다 질 쯤 어서 숙소로 돌아가 밥을 해먹자는 ‘한식’파 부모님에게

“여기선 파스타 같은 것도 먹고 그래야지”라며 투정부렸던 기억도 난다.

그때 나는 “다음엔 꼭 혼자 류블랴나 여행 와야지”하고 다짐했었다.

부모님에게 심술이 나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류블랴나가 너무나 좋았던 것이다…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 스타리 모스트와 모스타르 도심 풍경 

 

8. 모스타르

반나절이면 도시 한바퀴를 두번 돌고도 남을만큼 작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작은 도시 모스타르는 동화 속 마을 그 자체다.

석재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새하얀 돌집들과 곳곳의 모스크들,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옥빛의 네레트바 강과 강을 가로지르는 아치형의 다리 스타리 모스트..

그러나 들여다보면 90년대 초 내전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 여기저기 총탄이 박혀 있고 도시 곳곳에 어린 아이들의 묘지가 자리해 마음이 무거워졌던 곳.

모스타르는 참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예쁘고 슬픈 마을을 남은 생애 한 번은 또 갈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Seunghye Yoo

걷고 쓰는 사람 https://blog.naver.com/ysh3208 [저서] -쉼표,경주 -쉼표,강릉 -쉼표,군산 -쉼표,제주 -쉼표,앙코르와트 -같이 오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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